지난 시간에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은 붕괴하며 그 자리는 서고트 왕국에게 넘어갔습니다. 서고트 인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야만인’ 이라고 부르던 민족으로, 북방에서 넘어온 게르만 혈통의 민족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그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들의 수가 너무 적었다는 것입니다. 전 시간에도 보았듯이 서고트인들이 로마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수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이 아니라 새로운 군대의 중심으로 태어난 기병대의 힘이였습니다. 게다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동력을 이용해 전투를 벌이던 그들은 당연히 집단의 규모를 작게 유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서고트 왕국은 자연스럽게 소수의 지배계층인 서고트인들과, 다수의 피지배계층인 히스파니아 (로마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부르는 말) 인들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서로는 언어도 게르만어와 라틴어로 달랐으며 생활 방식 역시 달랐기 때문에 섞이기 힘든 물과 기름과도 같았습니다. 이렇다 보니 서로간의 소통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고트 인들은 다수의 히스파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들을 공격하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에 빠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히스파니아인들과 피가 섞이게 될 경우 당연히 소수 집단인 자신들의 혈통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 서고트인들은 우선 스페인 곳곳에 성을 세우고 성 안에서만 거주하며 자신들의 최고 무기인 기병대를 이용하여 성 밖의 히스파니아인들을 무력을 통해 지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히스파니아 인들과의 결혼을 금지하며 혈통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물과 기름을 섞어놓아도 처음에는 분리되어있지만 나중에는 합쳐진다는 사실 아시나요? 실험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고트인들은 시간이 흐르며 히스파니아인들에 점차 동화되며 섞이게 됩니다. 사실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으로 섞이게 된 것은 아니였고, 당시 문자가 없던 게르만 인들이 서고트 왕국의 법체계 등을 만들기 위해 히스파니아인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를 공식어로 쓰게 되며 로마의 체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한 몫 하였습니다.
여기서 잠시 종교적인 역사를 살펴보자면, 당시 유럽은 예수님을 신으로 보느냐 인간으로 보느냐라는 문제에 대해서 대립하는 아리우스교 (동방교회)와 아타나시우스교 (서방교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동방교회는 예수님에게 신성을 부여하지 않는 반면 서방교회는 예수님에게 신성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모순이 생기는데요, 성경에는 하느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교리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벽화나 조각상과 같은 작품들이 우상숭배로 간주되어 파괴되기도 하였죠. 하지만 서방교회의 논리대로라면 그들은 예수님을 신으로 섬기게 되므로 성경에 모순되는 행위가 됩니다. 여기서 서방교회는 삼위일체설을 내세우며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요,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성령은 서로 다르면서 같다! 라는 삼위일체설을 통해서 예수님을 신으로 섬기면서도 하느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모두 지키게 됩니다. 로마카톨릭에서 십자가에 예수님 상이 있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죠.
사실 역사로 치자면 그리스도교의 중심이었던 동방교회가 먼저이지만 서방교회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급성장하였는데요, 특히 당시 고리대금업으로 고통받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자 받는 행위를 금지하며 돈을 무이자로 빌려주던 서방교회는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서로 성장하다 결국 그리스도교의 패권을 두고 한바탕 충돌을 벌이게 되었는데 여기서 서방교회가 승리하며 로마카톨릭이 되고 동방교회는 이단으로 몰리게 됩니다.
한편 유럽의 주류와는 달리 서고트인들은 6세기까지 동방교회를 믿어왔고,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스페인에는 동방교회의 정신이 남아있어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시에 이는 스페인 여성들의 성적 (holy, erotic의 이중적 의미)인 불안감을 초래했으며 이로 인해 스페인의 처녀들은 예수님이라는 가장 완벽한 남성상을 두고 결혼을 할 수 없다며 결혼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서고트 왕국에서도 시간이 흐르며 서고트인들의 왕위다툼으로 인해 정세가 불안해지며 나라 전체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711년 경에 북아프리카로부터 넘어온 무어인들, 즉 이슬람 세력은 엄청난 기세로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며 한달여만에 대부분의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하게 되는데요, 이들의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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