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 1 [고대 스페인]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알아보자 했는데 왜 처음부터 고대 스페인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일단 끝까지 들으셔야합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좋던 싫던 간에 스페인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일본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말이죠.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스페인이 끼친 영향은 지대하며, 이로 인해 스페인의 역사를 살펴보지 않고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설명하기 매우 힘듭니다. 따라서 처음 시작은 고대 스페인의 역사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지도

 

 

  오늘날에 와서는 스페인이라는 국호가 굳어졌지만, 과거에는 스페인이 포함된 반도를 그리스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 히스파니아 (Hispania), 에스파냐 등으로 불려왔습니다.

 

  고대의 이베리아 반도에는 바스크인과 이베리아인이 살고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반도국가의 특성상 수많은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비슷한 반도국가인 우리나라가 오래 전부터 주변 국가들의 침입, 주로 중국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아왔던 것과 비슷하게 말이죠. 이중에서도 바스크 민족은 굉장히 독특한 민족으로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베레모 모자가 바로 바스크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들은 스페인어 대신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인 바스크 언어를 사용하는데, 바스크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어군에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오늘날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기도 한 바스크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이렇게 이야기 하다가는 이것만으로 한페이지가 넘어가기 때문에 일단 패스하겠습니다. 패스!

 

 


 

 

  한편 가장 처음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내륙에 대규모로 침입한 것은 우리에게 바지의 시초로 널리알려진 켈트인들이 기원전 1100년경에 침입한 것입니다. 이베리아인들에겐 침입자이자 나쁜 놈들이지만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편한 바지 대신 불편한 옷들을 입고 살아가고 있었을 거에요. 싸이도 나팔바지 신곡도 내지 못했을거고.. 혹시 이베리아인들이 켈트인에게 패배한 이유가 바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아무튼 그들의 침입 이후 켈트인들과 이베리아인들이 서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혼혈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다수의 켈트-이베리아인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Locatie_Middellandse_Zee.PNG

 

 

  두번째 대규모 침공은 기원전 237년 경 카르타고 인들이 침입한 것입니다. 카르타고는 우리에게 페니키아인들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만든 페니키아 문자는 오늘날 알파벳의 기원이기도 하죠.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 근처에서 기원하여 튀니지 지방 근처에 카르타고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한 페니키아인들은 당시 북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레바논과 튀니지가 어딘지 모르겠다면? 어차피 이야기 이해하는데 별로 상관 없고 북아프리카 어딘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던 와중, 지중해의 패권을 쥐고 있던 그리스가 약해지며 지중해의 해상 지배권을 두고 카르타고는 로마와 필연적인 경쟁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그냥 지중해는 넓으니까 반반씩 쓰면 안되냐고 묻는다면 대답해드릴 말씀이 없네요. 누군가가 글을 읽고있는 당신이 밥먹고 있을 때 젓가락 두짝이나 있으니 한짝을 달라고 한다면? 정말 화가 나겠죠. 로마와 카르타고도 마찬가지로 화가나서 싸우게 된 겁니다.

물론 비유를 이상하게 했지만 드넓은 푸른 바다 위에 넘실거리는 물결, 그 속에서 파닥파닥 돌아다니는 물고기들, 그리고 지중해를 거쳐 당시에는 미지의 세계이긴 했지만 미지의 세계로 헤엄쳐 나가는 이 로망! 가장 중요하게는 배를 통해 무역하며 얻을 수 있는 money!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바다로 이끌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역사책에서 수없이 들은 제 1차 포에니 (페니키아의 로마어) 전쟁이 펼쳐졌고 결과는 로마의 승리였습니다. 당시 카르타고 군의 사령관이였던 하밀카르 바르카는 복수를 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카르타고로 복귀하지 않고 이베리아 반도로 넘어가 이베리아 반도를 정벌했습니다. (고래 싸움에 등터진 스페인.. ) 그리고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이자 우리가 잘 아는 한니발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로마에 대한 복수심을 교육받으며 자라 커서 제 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차 포에니 전쟁과는 다르게 카르타고는 한니발의 신들린 지휘 아래 승기를 잡으며 로마를 포위하는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지구전 전략을 펼치며 로마의 곡창지대를 태우고, 특히 한니발 군대의 식량의 보급지였던 이베리아 반도를 손에 넣으며 한니발을 애타게 만들었습니다. (고래 싸움에 배까지 터진 스페인.. ) 이후 자바 회전에서 로마의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군대를 완파하였고 이로 인해 카르타고는 제 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패배하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후, 카르타고의 반항의지를 완전히 꺾으려는 로마의 강력한 정책에 반발한 카르타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 제 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지만 이미 힘을 다 써버린 그들은 패배하였고 로마는 카르타고가 지속적을로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지구상에서 카르타고라는 국가가 존재했다는 흔적을 말살해버리기로 결정합니다. 이렇게 카르타고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주제인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스페인은 로마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정복지 중 하나였습니다. 기원 후 게르만 족의 침입 전까지 단 한번도 주된 전투에서 패한적이 없으며 극강의 모습을 자랑하던 로마군이였지만 스페인을 정복하는데는 약 200년 가량이 걸렸으며 이는 로마의 수많은 정복지중 정복하는데 가장 오랜 기간이 걸렸던 곳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왜? 왜? 왜?

이렇게 스페인을 정복하는데 로마군이 애를 먹었던 이유는 바로 스페인의 개인주의 문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잠시 역사상의 대제국이였던 페르시아 제국이나 아즈텍 제국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과연 페르시아를 정복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나 아즈텍 제국을 정복했던 코르테스는 그 적은 군대로 어떻게 거대한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모든 도시들을 하나씩 찾아가서 무너뜨려야 했다면 페르시아 제국을 정벌하는데 수십년이 걸렸을 겁니다. 힘들게 힘들게 싸워서 한 마을을 무찔렀더니 부하가 와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대왕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이틀동안 더 행군해서 B 마을을 무너뜨리러 갑시다!" 저같아도 짜증이 납니다. 아마 알렉산더 대왕도 짜증이 났을 거고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본국인 마케도니아로 돌아갔을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들의 특징은 가장 우두머리를 잡게 되면 그 아래는 자연히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죠. 실제로 페르시아 제국은 다리우스 황제가 죽은 뒤 급격히 무너졌으며 아즈텍 제국 역시 이를 이끌던 목테수마 2세가 사로잡히자 대항할 힘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이베리아인들은 철저한 개인주의 문화 아래 서로 뭉치지 않으며 개별 부족들로 존재하였고 지방색의 긍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스페인 및 라틴아메리카에까지 이어져오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로마군은 이전의 전쟁과는 달리 한 부족을 무너뜨려도 그 다음 부족이 등장하고, 이를 무너뜨려도 또 다음 부족이 남아있는 상황속에 이겨도 이겨도 끝이 나지 않는 전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로마군 입장에서는 분명히 예전처럼 부족의 우두머리를 잡았으니 이제 전쟁이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우두머리는 사실 전체 이베리아 반도의 수많은 부족들 중 새발의 피에 불과한 것이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에 스페인 군대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부족 단위로 나뉘어 존재했던 스페인 사람들이 현명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아마 위에서 포에니 전쟁 당시 등에 배까지 터진 이유도 단합을 하지 못해 깨졌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물론 스페인 땅이 무한대로 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씩 하나씩 부족들을 무너뜨린 로마군은 결국 오랜 시간의 전쟁 끝에 이베리아 반도를 손에 넣게 됩니다.

 

 

아직도 가동된다는 세고비아의 로마시대 수도교

 

 

  여기서 또다른 스페인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는 비단 스페인 뿐 아니라 많은 반도 국가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바로, 정복자의 문화에 철저히 동화된다는 점이죠. 물론 참조한 예시가 우리나라와 이베리아 반도 두 곳밖에 없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명나라가 망해가던 순간까지도 명나라와 친하게 지냈던 것처럼 이들 모두 외세에 끊임없이 저항함에도 한번 정복당할 경우에는 그 문화에 철저히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로마는 스페인을 정복한 뒤 타 정복지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반란의 징조가 없었던 이베리아 반도에 단 한 개의 군단도 파견하지 않았으며 최초의 속주 출신의 로마 황제이자 오현제 중 한명인 트라야누스 황제 역시 이곳 출신입니다.

 

 


 

 

다음번에는 로마의 멸망서고트인들의 침입 하의 이베리아 반도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